옷소매 붉은 끝동 표지
0.0 ☆☆☆☆☆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기록
2026.08.11

2025. 7. 19

원래 드라마를 끝까지 못 보는 병이 있었는데 만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완독?완청?한 드라마가 생겼다.
지금도 이 드라마의 브금을 듣고 있다.. 너무 좋음.

정조와 의빈 성씨의 실화 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는 몇 해 전 드라마 연인과 함께 명작 사극 로맨스 드라마에 등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선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기사부터 찾아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니 스포일러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근데 애초에 꽤 된 드라마라 클립을 좀 봤음) 궁금해서 보게 됐다. 보니 익숙한 역사 속 인물들도 나오고 그랬다.

역사 속 정조의 인상은 일 잘하는 무서운 상사 하지만 백성에겐 다정함<이었다. 영조의 총애를 받은 똑똑하고 왕권 강력한 왕이고, 신하들한테 장난도 치고 화성도 짓고 정약용이랑 이것저것 만들고..
이런 왕으로서의 인생에 십수년 매달린 여자가 있다니 정말 드라마보다 더한 설정이다. 그러니까 드라마로 만든 거겠지. (원작은 소설이지만)

드라마를 보기 전 접한 클립은 여주인공이 떠나는 여인들 뒤로 손을 흔드는 동시에 본인의 자유에도 작별을 고하는 장면이었다. 그땐 그냥 배우의 아이디어로 좋은 장면이 나오다니 좋네~ 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그렇게 슬픈 장면인 줄 몰랐음………………… 지금 하필 관련 브금이 나오고 있어서 쓰다가 눈물이 차오름…

두 주인공의 유년기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하는 초반부는 귀엽고 제법 코믹했다. 로코 느낌이었다. 로코면서도 사극인데다 하필 정조의 보호자가 영조다 보니(+사도세자)중간중간 무서운 장면이 나와 무게감이 잡혔었다. 그러다 여러 사건에 연루되면서 주인공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기도 하고 모함되기도 하며 회차가 진행된다. 주인공들이 성장하고, 덕임이 편하게 생각했던 관리의 진짜 정체가 세손이라는 걸 알게 되고, 덕임이 진심으로 이산을 모시게 된 순간부터 정말 수많은 사건이 휘몰아친다. 시기 질투로 일어난 사건도 있고 역모의 시작점이 되는 사건도 있고..

그중에서도 시청하는 내내 제일 두려웠던 건 영조의 존재였다.


무서웠던 장면을 둘 꼽는다면 사도세자의 아들인 이산에게 “산아, 너 고칠 수 있어!”라며 사도세자와 달리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해주겠다며 폭력을 행사하던 장면과 치매로 정조와 사도세자를 헷갈려 고함치던 장면이다. 작품 내내 영조는 거의 재난이었다. 그러는 동시에 정조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영조가 손자를 아끼는 것, 정조가 영조를 원망하는 동시에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한 나라의 왕들이라는 것. 이게 다 공존하기에 더 복잡했고, 나중에는 영조가 등장만 해도 긴장됐다. 하지만 영조의 마지막이 다가온 시점에서는 무섭다기보단 괴로웠다. 영조가 신하들 앞에서 정조를 사도세자로 착각한 것에 스스로 충격을 받아 울부짖고 두려워하는 장면은 초반 회차에서는 상상도 못할 장면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무너진다니… 연출과 배우들의 호흡이 좋았다. 울부짖는 장면들이 너무 생생해서 자꾸 인물들이 울 때 나도 울었음..

-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많은 인물이 죽는다.
창작된 스토리가 아니라 실제 역사가 배경이기에, 인물들의 끝이 다 정해져 있으니까.
때가 오면 인물들은 역사 시점에 맞게 퇴장한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인물이 퇴장한다.
옹주의 양자 도승지도, 영원히 두려운 존재로 남을 것만 같은 영조도 죽음을 맞이하고, 제조상궁은(이쪽은 픽션일 듯).. 사실 이해가 잘 가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안타까웠다.

아예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 죽기도 하고, 사약을 받아 죽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후궁이 되었다 빠르게 숨지는 아이도 나온다.
심지어 주인공 부부의 아이, 건강했다면 정조 다음으로 현명한 군주가 되었을 세자조차 마지막 화 시작과 동시에 홍역으로 먼 길을 떠난다.


개연성으로 인한 것이 아닌 순수 역사적 사실이라는 게 더 비통했다.
실제로, 사람의 수명이란 것은 각본과 연출이 있는 드라마와 다르게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끝나곤 한다.
갑자기 아파서 죽고, 사고를 당해서 죽는다.
이유가 있어서 죽는 경우도 있지만, 없이 죽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 드라마 역시, 아무리 사건을 꼬고 더 극적으로 연출할지라도 이미 정해진 인물들의 수명만큼은 바꿀 수 없다.
아무리 찬란하고 현명한 성덕임이라 할지라도, 로맨티스트 성군인 정조라고 할지라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수명대로 죽는다.

드라마 속 시간이 흐를수록 인물의 등장보다도 퇴장이 잦아진다.

이 다음 장면에서는 누가 세상을 떠나더라, 어떤 난리가 있었던가, 역사책 기억을 되살리고 있노라니
이 이야기의 기반이 되었을 실제 인물들의 삶도 문득 궁금해졌다.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런 삶이 아니었다면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을까?

이런 인물들의 죽음 속 역시 제일 후유증이 큰 건 여주인공 덕임의 죽음이다………

예상한 바: 마지막화 러닝타임 5분 남았을 때 임종하고 행복했던 그때를 그리는 정조로 끝남
드라마가 준 것: 막화 시작하자마자 자식 죽는 씬으로 시작하고 10분?20분만에 덕임이도 죽음



-


작중 내내 제일 시원시원하지 못했던 것은 덕임의 마음이다. 별로라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그게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주제다.


작중 덕임은 누구보다 활동적이고 글을 좋아하는 궁녀였다.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맹랑하고 유쾌한 인물이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꼬마 전기수로 나온다. 아마 궁녀가 아니라 궁 밖의 일반인이었다면 더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이미 궁녀인 것부터가 이 덕임이라는 인물한테는 족쇄와 다름없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나름 반기면서 잘 살던 듯하다. 적성에도 잘 맞고..

직접 연을 날리며 주군을 구하던 이 궁녀는 스스로 후궁이 되면 날개 꺾인 새가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작중 내내 정조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정조 앞에서는 절대 후궁이 되지 않겠다 말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게 이 인물의 의지였고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랬더니 정조가 후궁돼서 옆에 있을래 아니면 영영 쫓겨날래를 시전하고 말았음.. 너그거아니야 그만둬.. 하면서 봄.

이 작품에서 계속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 궁녀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궁녀들의 의지는 정말 아무 소용이 없는가였던 것 같다. 찾아보니 드라마는 정조 시점으로 많이 각색이 되었고, 원작은 궁녀들을 좀 더 조명한다고 하더라.(많이 찾아본 건 아니라 틀릴 수 있음)

궁녀인 시절의 덕임과 후궁이 되고 나서의 덕임은 정말 다르다. 의빈 성씨는 잘 꾸며진 방에서 잘 꾸며진 채 하루종일 정조를 기다리는 것밖엔 할 수가 없다. 이전처럼 책을 필사하지도, 저잣거리에 나가지도 못한다. 다른 드라마처럼 중전이 됐다면 일을 하면서 생기가 넘쳤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불가능한 출신이다. 어쩌면 정말 홍덕로의 제안대로 멀리 도망쳐 살았으면 덕임 기준에서의 행복은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더 장수했을지도 모르지.. 의빈 성씨는 내내 창백한 얼굴, 아련한 눈빛이다. 생기 넘치고 심지 곧은 궁녀 시절과 정 반대다. 이걸 연기해 낸 이세영 배우도 대단하다. 눈망울이 정말 예뻤는데 마지막 화 내내 희망과 의지를 잃은 채 스러져가는 모습이 눈빛으로 표현되어 보는 내내 서글펐다.


아마 궁녀로 남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덕임은 장수했을 것이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더라도 그때까지는 즐겁게 살 것이고, 어쩌면 새로운 궁녀들과 즐겁게 지내며 그래도 다채로운 일상을 살아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정조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스스로가 있었는데도 정조의 “넌 내 것이다” 이 한마디에 덕임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보는 내내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정조의 입장이다. 일만 하더니 미쳐버렸는지 가질 수 없다면 강제로 옆에 두겠다며 난리를 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잘 해주었지만 그건 본인 딴에 잘 해준 거지 그 모든 게 덕임이 바란 일은 아니었을 것임.. 실제 역사속에서는 이 두 사람이 어떤 사이였고 어떤 과정으로 후궁이 되었는지 나와있지 않다. 드라마보다도 더한 위계질서를 이용해 후궁으로 들였을까? 아니면 이쪽 현실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회유해서 그래도 잠시나마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까?


-


드라마를 보면서 좋았던 포인트 중 첫 번째는 배우들의 눈물 연기이고 두 번째는 bgm이다.
다들 감정을 담아낸 눈물 연기를 너무나 잘 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덩달아 울었다. 한준호씨가 우는 연기를 정말 잘 하더라.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도 못 쉬고 우는 장면이 있었는데(영조죽을때였는지 아이였는지 의빈이었는지 벌써기억안남) 나도 소리 못 내면서 눈물만 주륵주륵 흘렸다.
사실 드라마를 완주하게 된 계기는 노래였는데, 처음 몇 화 조금 보고 나서 노동요로 틀어두려고 앨범을 보니 드라마 배경음악 제목이 흥미로웠다.

산, 의지/영조, 분노/덕임과 신호연

이런 인물과 사건or인물과 감정 구성인데 들어보니 노래들이 정말 좋았다. 분위기가 정말 잘 잡혔고 한가지 멜로디를 가지고 다양한 분위기로 재활용하는 것이 (원래 모든 드라마 특징일지도 모르겠지만)인상깊었다. 각 인물의 테마곡도 인물들과 쏙쏙 들어맞는다. 덕임은 통통 튀면서도 곱고 산은 낮고 진중한 느낌인 듯..

듣다 보니 아직 그 노래들이 나오는 장면들이 궁금해졌다. 이 곡의 제목은 이런데 어떤 상황에서 등장하는 걸까. 어떤 분위기로 진행되길래 이런 비통한 멜로디일까. 드라마를 전부 보고 나서는 제목과 멜로디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멜로디들이 정말 좋다. 웅장할 때는 웅장하고, 같은 멜로디를 활용해도 감정선에 따라 무서운 느낌도 주고 아련한 느낌도 준다. 감정이 인물들과 동기화되는 느낌이다.

특히 주인공들이 뭔가 결심하거나 중요한 일을 벌일 때마다 나오는 곡이 있는데 그게 정말 좋다.

산, 의지: 산이 행동에 나설때마다 나오는 브금

산, 그리움

선택

승은을 입으면 돼: 애처롭고 약하면서도 폭풍처럼 휘몰아침. 마치 궁녀의 마지막 한 수처럼..

영조, 분노: 진짜 개무서움

수수께끼

산, 눈물

덕임, 운명: 덕임이 결심할때마다 나오는 브금

산과 영조: 참 복잡하고 원망스러우면서도 말할 수 없는 묵직한 감정이 노래로 표현된게 신기

잃어버린 기억: 이거 스토리텔링도 정말 좋음..

덕임과 신호연: 긴박하면서도 웅장하다..

영조, 승하: 음악에서 채도가 빠진 느낌을 처음 받아봄. 장례식같음

덕임, 순간/영원: 영원 버전에서 속도가 아주 느려지며.. 정말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줌 너무 소중해서 이별하는,,? 느낌을 줌..

산, 순간/영원: 영원 버전 그리워하면서 혼자 남아있는 느낌을 줌..

좋아하는 노래들 쓰면서 또 마지막 순간영원 듣고 울먹울먹 하는 중

-

작성한 후기 분량을 보니 진심 재밌게 본 듯하다.
재밌었다. 재탕할 생각은 없다. 이런 작품은 그거다. 엔딩이 너무 슬퍼서 1화에서 행복했던 시절만 봐도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류의 작품… 볼 자신이 없다.

그냥 둘이 평생 세손이랑 궁녀로 있었으면 좋겠다. 짱!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